우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 초등학교 뒷산에는 작은 약수터가 있다.
몇 구비의 산을 휘돌고 나서 계곡을 따라 졸졸졸 샘물이 흘러내리는 이곳은 혼잡한 도심 속에서도 유일하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. 게다가 약수터 한 켠에는 몇 가지 운동 기구까지 적당히 갖추어져 있어서 평소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는 산책 삼아 이 곳을 자주 찾는다. 직업상 저녁에 출근을 하는 나는 종종 한가한 오후 시간을 택해 약수터에 다녀오곤 하는데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물통 하나 달랑 들고서 약수터를 찾았다.

그런데 그 날 따라 약수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.
모두들 물통을 일렬로 세워 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. 어쩔 수 없이 나도 가져간 배낭 가득 여러 개의 물통을 가져와 물을 받고 있었다.
왠지 마음이 언짢았다. 그 세 사람은 뒷 사람들의 기다림은 상관도 하지 않고 여러 개의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산을 내려갔다. 나머지 사람들도 차례로 약수를 받아 하나 둘 약수터를 떠났다.

조금 후 저녁 해가 서서히 뒷산에 가리워지자 걱정이 밀려왔다.
시간을 보니 출근시간에도 늦을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이미 짙게 내려 앉은 어둠이 더 무서웠다. 이제 남아있는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중년의 부부와 나 뿐이었다. 앞에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마저 가버리고 나면 물줄기도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산 속에 나 혼자 남을 것이었다. 가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. 이런 나의 낌새를 알아차린 듯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.
“우린 천천히 받을게요. 먼저 받지 그래요.” 아저씨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얼른 내 물통을 대고, 인사를 했다.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.
그때 앞산을 바라보고 있던 아주머니가
“벌써 해가 다 졌네요”
하고 말하자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.
“해가 지면 달이 뜨겠지!”